[기자의 눈] ‘우정의 종’과 ‘네덜란드 카리용’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인근, 포토맥 강과 워싱턴DC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는 미국의 기념물 ‘네덜란드 카리용(Netherlands Carillon)’이 자리하고 있다. 카리용이란 여러 개의 종을 음계 순서대로 달아놓고 치는 악기를 말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1960년 이 카리용을 미국에 선물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이후 전후복구에 도움을 준 미국에 대한 감사와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전달한 것이다. 네덜란드 카리용은 높이 127피트 철제 타워 형태 안에 53개의 종이 달려있는데, 가장 작은 종은 35파운드이고 가장 큰 종(부르동)의 경우 1만2654파운드로, 총 중량이 6만1403파운드나 된다. 샌피드로 엔젤스 게이트에 있는 ‘우정의 종’이 3만7478파운드(17톤)인 것을 고려했을 때, 종 무게만 약 1.5배가 더 무겁다. 종은 약 5분의 4가 구리이고, 나머지는 청동 합금으로 만들어 졌다. 카리용은 설치 후 구조적 특성과 빠른 부식 등으로 인해 59년 동안 3번의 보수작업을 거쳤다. 첫 보수작업은 헌정된 지 25년도 채 되지 않은 1983년 타워의 강철 패널 손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1995년 네덜란드 해방 50주년 기념으로 대대적인 2차 보수 작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2019년 12월 대규모 3차 보수작업이 이뤄졌다. 약 2년에 걸친 공사 끝에 지난 2021년 새로운 종 3개를 추가한 업그레이드된 ‘그랜드 카리용’이 공개됐다. 눈여겨볼 것은 세 차례의 보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네덜란드 정부와 커뮤니티의 행동이다. 2차 보수 때 카리용의 의미에 감명을 받은 저명한 네덜란드 사업가 그룹이 만든 재단이 주축이 되어 네덜란드 상공회의소, 네덜란드-아메리카 재단, 네덜란드 정부와 함께 당시 140만 달러를 모금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3차 보수를 추진하기 시작한 2016년에는 국립공원관리국(NPS)과 네덜란드 대사관은 카리용 복원을 위해 580만 달러 기금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당시 NPS는 400만 달러까지 지원을 약속했다. 2019년 3차 보수 공사가 시작됐을때 NPS는 카리용의 타워를 맡아 강철판과 내부 구조에 대한 광범한 복구 작업을 진행했고, 네덜란드 대사관은 종들을 네덜란드로 옮겨 수리했다. 네덜란드 카리용의 보수 과정은 ‘우정의 종’과 비교된다.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한미 우호의 상징으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선물한 우정의 종과 종각은 지난 2013년 한차례 보수 공사가 이뤄졌지만 현재 또다시 대규모 보수 공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1차 보수 공사 당시 한국 정부는 비용 3억원(약 27만5000달러)을 지원했고, LA 한국문화원과 ‘우정의 종’ 보존위원회가 실무를 맡았었다. 하지만 종각 관리 책임이 있는 LA시 정부로부터는 예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도 나 몰라라 하는 상황이다. 이미 한 차례 지원했으니 앞으로는 선물을 받은 쪽에서 관리 비용을 대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부처인 LA시 공원관리국은 여전히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보존 단체는 둘로 쪼개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네덜란드 카리용’의 보수 과정과는 대조적이라 씁쓸함 마저 들게 한다. 만약 네덜란드가 한국에 카리용을 선물하고 ‘관리는 받은 쪽 책임’이라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우정의 종’은 한국에서 제작된 만큼 보수에 필요한 물적·인적 자원을 가진 것도 한국이다. 비록 선물로 준 것이지만 그 선물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야 한다. 또한 한인 사회는 미국 정부가 관리·보존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우정의 종’의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최근 ‘우정의 종’ 관광객을 위한 전문 가이드 배치는 그러한 노력의 좋은 예시다. ‘우정의 종’도 ‘네덜란드 카리용’의 모범 사례를 따랐으면 좋겠다. 장수아 / 사회부기자의 눈 네덜란드 카리용 네덜란드 카리용 네덜란드 정부 네덜란드 대사관